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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야기

혐한 시위를 멈춘 일본의 마을 '사쿠라모토'이야기




세월호, 국정농단으로 인한 촛불시위, 대통령 선거로 한국이 정신없던 2015~2016년. 

일본에서는 혐한 시위를 멈춘 마을과 주민들, 그리고 그들을 도운 일본의 양심있는 시민들이 있었다. 





8월 15일을 맞아 혐한 시위에 맞선 일본인들의 다큐멘터리 영화, '카운터스'가 개봉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치적 배경과 상관없이, 일본 우익단체의 '헤이트 스피치'에 부끄러움을 느낀 양심있는 일본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혐오시위에 대응한 것이다. 





영화소식을 듣고, 최근에 읽은 책이 생각났다. 일본의 신문사 '카나가와신문'이 발행한 책, '헤이트 스피치를 멈춘 마을' (부제; 차별은 사람을 죽인다)이다. 한국에는 아직 출간이 되지 않았지만, 당시 상황과 인물들의 모습을 아주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참고로 '카나가와신문'은 (내가 봤을 때는) 일본에서 처음 본 '진보언론'이다.  


이야기를 간단히 소개한다. 


도쿄의 바로 밑, 카와사키시 '사쿠라모토'는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재일동포분들이 오래전부터 삶의 터전으로 살아온 곳이었다. 단순한 코리안타운이 아니라 주변에 사는 일본주민들과도 평화롭게 지내던 곳이었다. 마을에는 교류를 위한 회관도 있었다. 축제 때는 풍물놀이대가 거리를 지나고, 함께 한국 요리를 나눠먹고, 재일동포 2세 3세 아이들이 서스럼없이 '안녕!'하고 인사하는 곳이었다. 



사쿠라모토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부천타임즈의 사쿠라모토 축제 기사 / 2004년 

http://www.bucheon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3909



그런 '일상적이고 평화로운 거리'에 어느날 악마들이 찾아왔다. 극우단체이자, 혐한 시위로 악명이 높은 '재특회'. 신오쿠보에도 나타났던 그들이 카와사키시 '사쿠라모토'를 습격한 것이다. 아이들과 할머니들이 일상적으로 거닐며 교류하며 평화롭게 지내는 동네에 그야말로 악마들이 찾아온 것이다... 그들의 구호는 하나같이 한국인들을 증오하는 것이었다. '바퀴벌레 조선인, 구더기 조선인을 일본에서 쫒아내자! 한국으로 돌아가라!'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의 동네에, 불현듯 그런 악마들이 나타나 당신에게 증오의 말을 퍼붇는다고 생각해봐라. 무섭고, 절망적이지 않겠는가? 


그런데 더 절망적인 것은 (헬조선에 살았던 우리에게는 익숙한 일이지만) 경찰 병력이 마을 사람들이 아니라 '악마들'을 보호했다는 것이다. 왜냐고? 그들은 '합법'적인 절차로 시위 신고를 했고, 그 신고는 접수가 되었으니까. 일본에서는 (당시에는) 그들의 인종차별적인 시위를 법으로 제어할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저항했다. 거주하는 재일동포들은 물론 그들과 결혼한 일본주민들, 마을주민들, 그리고 영화에도 나오는 양심적인 일반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구성된 '카운터'들과 함께. 시위대의 몇배가 되는 인원이 모여서 '차별주의자'는 물러가라! 차별이 아니라 평화를! 증오가 아니라 공생을! 외쳤다. 결국 시위대를 막았다. 



현장의 분위기를 담은 사진들 / 우에다 치아키라는 분의 텀블러 

http://uedadada.tumblr.com/post/138934425073/


그러나, 시위는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마을의 중심적인 역할이기도 한 복지시설 '후레아이관'에서 일하는 재일동포인 '최강이자' 씨 등은 시위를 멈추기 위해 경찰과 카와사키시에 요청했지만 '법적 근거가 없다'는 대답 뿐이었다. '그래? 그렇다면 법적 근거를 만들면 되지!' 그 때부터 '헤이트 스피치 방지법'을 위한 최강이자 씨와 사쿠라모토의 긴긴 싸움이 시작되었다. 


최강이자 씨는 재일동포 3세이면서 일본인과 결혼하여, 그 사이에 아들 '나카네 네오' 군이 있었다. 그녀는 시위 현장에 남편과 아들과 함께 했고, 네오 군은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말로 잘 이야기하면 어른이니까 이해해 줄 것이라 믿었다, 평화롭게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다'던 네오 군의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고, 현장에서 펑펑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사쿠라모토의 싸움은 단순히 이념적으로 '헤이트 스피치를 막겠다'는 것을 넘어서 '삶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다. 


여당과 야당의 의원들이 사쿠라모토를 방문해서 평화롭게 거주하는 모습을 보고, 의회에서 발언을 하고, 언론에 나서고, 시와 만나고... 뼈를 깍는 노력 끝에 드디어 '헤이트 스치피 방지법'이 만들어졌다. 비록 실효성은 미비한 형태였지만 그래도 그것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지차이였다. 다시 한번 시위대가 시위를 신청해서 시위를 열었을 때, 이번에 경찰이 제지한 것은 시위대 쪽이었다. 


최강이자 씨의 일본 의회 발언 기사 /동아일보 2016년 5월 

http://news.donga.com/BestClick/3/all/20160503/77903159/1



그렇지만, 무대는 인터넷으로 넘어가서 차별과 헤이트 스피치는 계속되고 있다. 언론에 많이 노출된 최강이자 씨와 네오 군을 넷우익들이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공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수 많은 게시물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최강이자 씨는 이런 공격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해서 일본 법무부에 삭제요청을 하고 있고 대부분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한다. 


인터넷 공격에 대한 기사 /매일경제 2016년 11월 

http://news.mk.co.kr/newsRead.php?sc=30000001&year=2016&no=823050



앞으로 어떻게 하면 헤이트 스피치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을까. 이번 싸움에도 키가 된 것은 여야당 의원들을 설득해 법을 만든 것이다. 정치적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제도와 법이 만들어지면, 정부와 정치가가 소리내어 말하면 점차 해결할 수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결국 극우세력이 아니라 다른 세력이 정권을 잡아야 한다. 정권을 바꾸기 위해서는 시민이 일어나야 한다. 단순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혁명적 수준으로 일어나야 한다. 


한국의 촛불혁명은 대단했고, 끝내 이뤄냈다. 그것을 본받자는 일본의 분위기도 올해 초 있었다. 실제로 양심적인 일본국민들은 많다. 표현을 안해서 그렇지 아마도 우리 예상보다 훨씬 많다. 아내의 아버지 세대도 대학생 때 진보운동을 아주 강하게 했고 힘이 있던 때도 있었다. 공산당도 있다. 공산당을 지지하는 시민들도, 대부분 연로하신 분들이 많기는 해도 많다.  


그러나...


일본의 현재 정치상황을 봤을 때, 한국처럼 촛불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은 적다. 

아베의 부정부패로 올해 3월에 큰 시위가 일어났지만 몇만명 수준에서 그쳤다. 


한국과 가장 큰 차이를 하나 들자면, 언론일 것이다. 일본의 언론은 전멸이다. 그나마 아사히 신문사가 지속적으로 아베에 대해 보도를 하기는 했지만... 혁명이 일어날 수준의 불은 결국 피워지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아베와 자민당이 '잘 관리'했다. 

아베는 9월 총재선거에서 3선을 할 가능성이 크고, 자민당이 앞으로 정권을 유지할 가능성도 크며, 다른 당은 존재감이 너무 없고, 유력한 정치인도 별로 없다. 


대한민국과 북한, 미국의 관계가 급속도로 변하는 것이 일본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 일본의 극우세력도 변할까? 갑자기 한국과 친하게 지내고 재일동포에게도 상냥하게 대해줄까? 

일본의 극우세력이 이런 정세변화나 '카운터 시민'이나 '헤이트 스피치 방지법'정도로는 큰 타격을 받은 것은 아닐 것이다. 

정권을 잡고 있는 한 근본적인 것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차별을 부추기는 세력에는 의도가 있다. 혼돈을 야기하고 서로 증오하게 해서 발생되는 상황은 그들에게 이익이 된다. 

정말 악마가 따로 없다. 악마들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는, 그들은 반드시 다시 기어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반드시 더러운 짓을 할 것이고 흔적을 남길 것이다. 우리가 잘 봤듯이. 


불은 피워지지 않았어도 불씨는 살아있다고 믿는다. 아베 총리관저 앞에 모였던 분노한 시민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그들의 가슴속에 분노는 그대로 남아있다. 계기만 있으면 불은 화염이 될 것이다. 


이야기가 많이 옆길로 샛는데... 


우선은 최강이자 씨와 네오 군의 싸움을 한국에서도 많이 알게 되고 응원해줬으면 한다. 

그리고 일본에도 양심적인 시민들이 있고, 그들도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응원하고 연대하자. 그들은 우리의 동료다! 




마지막으로, 도쿄에 여행을 가신다면 그냥 사쿠라모토에 한번 들려보시는 것도 고려해보셔라. 

나도 일본에 사면서 아직 한번도 못가봤지만, 꼭 가서 '안녕!' 소리를 듣고 싶다. '안녕!'인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