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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자전거여행/홋카이도

인생의 스승을 만나다 2 #뒷이야기:: 홋카이도 자전거 여행기 :: 홋카이도의 여름




우연같은 필연으로 만난
인생의 스승과 하루를 보내고
여행자는 다시 떠난다.

짧은 만남은 긴 여운을 남기고 
영원한 이별의 인사를 나눈다. 

넓게 펼쳐진 길 위를 달리다

저 멀리 산 너머로 지는 해를
잠시 멈춰, 바라본다.

***

[ 2009-08-07 金 여행을 시작한 지 4일 째 ]
Story in Shimukappu(占冠)

***

[지난 화 줄거리]

여행을 시작한 지 3일 째, 
방황으로 녹초가 된 몸으로 도착한 작은 마을에서 한 할머니를 만난다.
할머니의 호의로 하룻밤 묵어가게된 늑대는 
달 밤에 산책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소중한 가르침을 배운다.

그리고 다음날...

***

[오전7시30분/아침밥과 엘비스 프레슬리]

잠결에 누가 깨워 일어나보니 레이코할머니였다.
시간은 7시 30분. 
새벽같이 떠날 예정이었지만
기숙사 직원들이 모두 출근한 후에 가기로 했다. 

눈 앞에는 정갈한 일본식 아침밥이 차려져 있었다. 
된장국(미소시루)과 돼지고기, 계란후라이,
쫑지를 떡고물에 버무린 놀라운 맛의 반찬과
커다란 고추 속에 계란찐 것이 든 반찬.
그야말로 진수성찬. 
"이타다키마쓰!(잘 먹겠습니다!)"
아침밥을 다 먹고, 함께 담배 한 개비.

그리고 할머니와 1시간 정도 
엘비스 프레슬리의 모음곡이 담긴 CD를 들었다. 
할머니에게 엘비스는 좋아하는 가수면서 
많은 추억이 담긴 노래의 주인공인 모양이었다.
'LOVE ME TENDER'
"자식 놈이 가게에서 내게 처음 불러준 노래가 이거였어."
'LOVE ME'
"이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

노래를 듣는 내내 엘비스에 대해 극찬을 하셨다. 
"이 사람은 정말 노래를 잘 부르는 것 같아.
노래에 따라서 다양한 음역, 장르, 분위기를 내는 것이 참 대단해.
여러 콘서트에 가서 다른 가수가 엘비스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들어봤지만, 역시 본인만은 못한 것 같아."

우리는 담배를 피며 엘비스의 노래를 들었다.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으며, 따라부르며.

참 기분좋은 시간이었다. 

"이거, 선물로 줄께."
노래가 끝나자 바상은 기념으로 CD를 주겠다고 하셨다. 
많은 추억과 애정이 담긴, 스스로 유일하게 챙겨온 CD를.

할 수 있는 모든 친절을 베풀고,
자신의 소중한 것까지 선물로 주시다니.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 CD를 받아들었다. 
내게는 CD플레이어가 없고,
여행 내내 한 번도 들어볼 기회가 없을 지도 모르는 CD였지만,
그런 사실은, 아무래도 좋은 것 아닌가.

 무언가 보답을 하고 싶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말 한마디 뿐이었다. 
"아리가또고자이마쓰.(감사합니다.)"


 ***

[오전8시30분/이별과 재회]

음악을 들으며 웃고 떠드는 동안, 
사장이 출근하는 9시가 가까워졌다.
우리는 밖으로 나갔다. 

이별의 순간.
여행자는 모두 떠나야 한다. 
떠나와서 만났고, 그 만남은 짧고, 
이별은 그 만남의 완성... 

"그럼, 가보겠습니다."
"바로 후라노를 향해 가는거야?"
"아니요. 어제 미찌노에끼에 물건을 놓고 온 것 같아서요.
벌써 없어졌을지도 모르지만, 한번 들렸다 가려구요."
"그래, 조심해서 가고."
"네, 할머니...아니, 선생님...
정말, 진심으로, 고마웠습니다!"

악수를 나누고, 나는 페달을 밟았다. 
(포옹을 해드리지 못한 것이 지금도 아쉽다.)

할머니는 내가 코너를 돌아 보이지 않을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고, 나는 계속 뒤돌아봤다. 

할머니와 함께한 시간은 비록 짧았지만, 
무척 깊이 있는 만남이었고,
여행 시작 후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사람이기에...
이렇게 쉽게 떠나간다는 것이 
아쉽고, 안타까웠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미찌노에끼는 정각 9시에 문을 열어서
남는 시간에 어제밤 할머니와 대화를 나눴던 벤치를 찍었다. 
 바로 어제 일인데도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던 때였다.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라? 할머니...?

멀리서 바쁜 걸음으로 할머니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뭔가 손에 들고 계시는데...?
...아! 벤또!

그러고보니 아침에 '내게 줄 벤또(도시락)를 
만들었으니 가져가라'고 하셨는데.
그걸 서로 깜빡했구나. 
"내 정신 좀 봐. 아침에 챙겨놨었는데, 깜빡했네.
그래도, 멀리 안가서 다행이야." 

이별의 감상에 푹 빠져있다가
 우연찮은 재회를 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한 편으로는 조금 힘 빠지면서, 한 편으로는 무척 반가운. 

할머니는 미찌노에끼가 문을 열 때까지 기다려준다고 하셨다. 
"아, 할머니, 그럼 같이 사진찍을까요?"
"이런 할머니랑 무슨 사진이야~"
"에이, 그러지말고 찍어요."
벤치에 앉아 우리는 사진을 찍었다. 
이때서야 나는 할머니의 어깨에 손을 살짝 올릴 수가 있었다. 

***

[오전 10시/안녕이라는 말 대신]

그 후 할머니는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 것과 
부서진 자전거스탠드를 고치는 것까지 신경써주었다. 
결국 물건은 찾지 못했고, 스탠드도 만족스럽게 고치진 못했지만, 
그런 건 역시 아무래도 좋았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이별의 순간. 

"그럼, 진짜로 가볼께요."
"키오쯔케테(조심히)... 잇테랏샤이.(다녀오렴.)"
"아...! 하하.. 잇테키마쓰! (다녀오겠습니다!)"

'사요나라'('안녕' 헤어질 때하는 인사말)라는 말 대신, 
'다녀오라'는 말이 그 후 얼마나 오랫동안 나는 감동시켰는지, 
할머니는 아마 모를 것이다. 

할머니는 내 뒷모습을 계속 지켜보셨을까?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나는 단 한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페달을 밟았다. 

바람이 차지도 않은데
코 끝이 찡했다. 


***

(Canon AE-1 Filmscan)


***

['치토세에서 시무캅푸까지'의 뒷 이야기]

여행의 가장 초반인 '치토세에서 시무캅푸까지'의 이야기가 겨우 끝났네요.
 (이런 속도로 연재하다간 여행기가 끝나는 것은 1년이 될지도...^^;)
나름대로 나눈 챕터가 끝날 때마다 이런저런 뒷 이야기를 쓰려 합니다~

처음에는 누구나 그렇듯 이런저런 방황을 하게 되죠.
하지만 그런 방황속에서 예측못한 만남도 생기구요.
제멋대로 떠나는 여행의 매력이 바로 그런 예측불가의 기쁨이겠지만,
대신 그 만큼 고생길은 훤하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치토세에서 시무캅푸까지의 길은 험했습니다. 
자전거로 갈만한 길은 아니었죠. 
(물을 많이 챙겨다니지 않았다면 지나가는 차를 세웠을지도...;)
물론 덕분에 레이코 할머니와의 만남을 가졌지만요!
그 만남은 여행 내내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고, 아마 평생 못 잊겠지요.

할머니와 다시 만나는 일은 없었습니다.
적어간 주소로 여행 중간중간에 엽서를 보내드렸고,
여행이 끝났을 때 새로운 엘비스프레슬리의 CD를 사서 보내드렸지만,
전화 통화를 한 일이 없어서 제대로 받으셨는지도 모릅니다. 
홋카이도를 다시 방문하게 되면 혹시 또 만날 수 있으련지...

시무캅푸이야기까지는 사진도 별로 없고 글만 잔뜩.
저 자신도 글만 잔뜩있는 여행기는 잘 안 읽어서;
되도록 간결하게 쓰려했는데... 
맘처럼 쉽진 않네요!^^

다음 이야기인 '후라노에서 비에이까지'부터는
사진이 많이 들어갈 예정입니다.
(후라노에서 겨우 디카를 구입해서^^;) 
관심있게 봐주시는 분들 언제나 감사합니다.
느린 연재지만, 한편한편 정성껏 쓰려고 하니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Canon AE-1 Filmsc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