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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자전거여행/홋카이도

여행은 방황에서 시작한다 :: 홋카이도 자전거 여행기 :: 홋카이도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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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8-04 火 ]
-Chitose(千歳)-



낯선 풍경 너머로 해가 진다. 홋카이도에 도착해 공항을 나서자마자 난 길을 잃었다. 그 사실이, 견딜 수 없었다. 견딜 수 없이 가슴이 뛰었다. 그토록 바라던 방황의 시작. [canon ae-1/film]



:: Story in [Incheon Airport-New Chitose Airport-Chitose/ Aoba Park] 

치토세 공항에 도착한 것은 오후 1시 무렵이었다. 잔뜩 긴장한 상태로 입국심사대를 통과하고 짐을 찾았다. 
카트에 모든 짐을 싣자, 다른 여행객들이 나를 힐끔힐끔 쳐다본다. 왤까? 나는 일본에서 통하는 얼굴인걸까? 
잠시 나 자신을 살펴본다. 

작은 가방을 허리에 매고, 자전거 핸들백, 앞 [각주:1]패니어 가방 두개, 뒤 패니어 가방 두개, 그리고 커다란 등산 가방 하나, 거기에 커-다란 무.언.가.를 쌓.아.놓.은 이.민이라도 온 것 같은 카트를 끄는 청년. 그것이 나였다. 
여러분, 저, 수상한 사람, 아님니다. 

아마도 그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커-다란 무.언.가.겠지. 그 뭔가를 해체하기 위해서 나는 공항을 헤매는 중이었다. 
여기서 문제.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일본인에게 건낸 첫마디는? 정답. "저기, 칼은 어디있죠?" ... 
물론 제대로 '커터칼'달라고 했다. '사시미'달라고는 안했다. 

커다란 뭐시기를 안정되게 싣느라고 옆으로 실었더니 길이가 너무 길었다. 
그 상태로 혼잡한 공항에서 엄청 돌아다니는 동안, 결국 내가 일본인에게 건낸 두,세,네번째 말은? '스,스,스미마셍!' 
그러나 공항에서는 안전 상을 이유로 칼은 판매불가였다.  (자전거여행자 여러분, 칼은 꼭 수하물로 보냅시다.) 

*   *   *

8월의 홋카이도는 시원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신치토세공항은 저 아오지 탄광과 비슷한 위치니까. 
그러나 생각만큼 시원하지 않았다. 
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가 일본-홋카이도에 있다는 것이. 
비슷한 얼굴을 가진 사람들, 현대적인 공항시설, 결코 여름이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는 더위. 

나를 실감나게 한 것은 '이것이 진짜 하늘'이라고 외치는 듯한, 더없이 선명한,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이었다. 
이제껏 내가 보지 못한 하늘아래서 그제서야 나 자신이 홋카이도에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긴장은 풀리고, 대신 가슴이 뛰었다. 

구석진(재떨이가 있어 항상 흡연자가 있던, 근처에는 택시승강장이 있어 기사아저씨가 있던, 
말하자면 다들 나를 구경하던! 그런 구석진)자리에서 나는 자전거 조립을 시작했다. 
칼이 없어 커다란 무.언.가.는 손으로 뜯었다. 
그 속에는 분리된 자전거와 부속 도구, 그리고 공구주머니가 있었다. 
칼 대신 니퍼를 이용해 자전거와 바퀴를 고정시켰던 케이블 타이를 자르고 본격적인 조립에 들어갔다.  

바퀴-[각주:2]프론트랙-리어랙-핸들바[각주:3]물통케이지-페달-안장-등등을 천천히 확실하게 조립했다.
 거기에 짐을 장착하고 쓰레기를 정리하고, [각주:4]담배를 한 대 폈다. 시계를 본다. 4시... 다시 본다. 4시... 
그래 처음이니까. 조립에 3시간쯤 걸릴 수도 있지...가 아니잖아! 어이, 아무리 여름이라지만 곧 해가 진다구?
이래서 연습은 중요한 것이다. 

자 이제 첫페달을 밟아보자. 이얍! ... 헉! 무겁다. 생각보다 너무 무겁다. 
짐이 40kg가까이 되니 그럴 만도 하겠지만, 문제는 핸들조차 제대로 조종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핸들이 제대로 고정되지 않아 헛돌기까지 한다. 
10M정도를 무척 위험한 상태로 주행한 나는 ... 일단 끌고 가기로 했다! 폼은 안나지만, 출발이다! 

:: Diary in [KE765]창 밖으로 한강이 보인다. 정신을 차리면 나는 홋카이도로 떠나는 KE765편에 있었다. 머리에 젓가락을 꽂은 스튜디어스 누나(?)가 지나다니는.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순간이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왜인지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왜일까?내리자마자 칼을 구해서, 자전거 조립에 착수한다. 그리고나서 출발. 그러나 내게는 뚜렷한 목적지가 없다. 이거 참... 꽤나 즐거운 상황 아닌가? 첫 목적지는 후라노. 혹은 삿포로. 잠시 후부터는 새로운 세상. 아니, 지금부터 매순간 새로운 세상. 내가 가는 길...



:: Story in [Incheon Airport-New Chitose Airport-Chitose/Aoba Park

을 물어 큰 도로를 찾는다. 최첨단 시대에 내가 가진 정보는 오직 [각주:5]'투어링메이플'이라는 지도책하나. 
큰 길에 접어들지만, 공항을 나서자마자 길을 잃는다. 본래 길찾기는 잘 못하는 데다가 낯선 곳이니 더더욱. 
한가한 도로에 자전거를 기대놓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예상한 상황이었지만 스스로가 참 우스웠다. 
여행을 시작한지 30분만에 길을 잃고 첫날 잘 곳도 마땅찮은 상황. 
해는 져가는데 말이다. 그렇게 좀 웃고 나니 힘이 났다. 
40km정도를 이동하려 했던 처음 계획을 수정해서 가장 가까운 캠핑이 가능한 장소를 찾았다. 
다행히도 가까운 거리에 캠핑장이 있었다. 

힘겨웠던 자전거도 어찌어찌 운전이 가능하게 되었다. 핸들은 여전히 흔들려 불안불안했다. 
치토세 시내에 접어들어 작은 자전거포에 들린다. 핸들을 고정시키고 싶다니까 안쪽에 본드를 발라준다. 
정말 친절하게 그리고 세심하게 처치해주었지만, 결국 완전하게 고정시킬 수는 없었다. 

겨우 정상적인 운행이 가능해져 본격적으로 캠핑장을 찾아나선다. 
길을 묻고 물어 30분쯤 헤맨 끝에 치토세 아오바 공원(青葉公園)을 찾았다. 
아오바 공원은 생각보다 큰 공원이었다. 각종 운동시설에 숲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나무가 많았다. 
어둑어둑 해져가는 공원안을 자전거로 한바퀴 둘러본다.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었는데,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   *   *

핑장은 공원의 가장 안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정확한 명칭은 '아오바 공원 피크닉 광장'으로 정말 넓은 잔디광장이었다. 
여행자를 위한 캠핑시설이라기 보다는 지역 주민들이 바베큐파티를 하거나 캠핑을 하기위한 시설같았다. 
관리실로 보이는 건물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캠핑하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어둑해진 공원은 살짝 겁이 날 정도로 조용했다. 바람이 불면 나무가 요란한 소리를 냈다. 
정말정말정말 내키지 않았지만, 다른 곳을 찾아나서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고, 무엇보다 많이 지쳐있었다. 
숙박하기로 결정하고 우선 자리탐색을 시작했다. 
벤치가 가깝고, 수도와 화장실이 바로 옆에 있는 곳에 텐트를 쳤다. 

해 질 무렵이라 그런지 모기가 무서울 정도로 많았다. 
더욱이 이곳에 그들의 먹이는 나 하나 뿐 아닌가? 
수천마리가 달려드는 끔찍한 느낌이었다. 
이런 상황에 바깥에서 저녁을 해 먹는다는 것은 자살에 가깝다는 판단을 내리고 
재빨리 텐트를 쳐 모든 짐을 넣고 방충망을 쳤다.

에어매트위에 눕고 긴 한숨을 쉰다. 배가 고프다. 
공항까지 배웅나와준 매형이 가방에 우겨넣은 몽쉘통통을 몇 개 먹었다. 
지쳐서 씻을 생각도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제는 완전히 어두워진 (화장실에 불도 안들어왔다.) 바깥에 나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고요한 가운데 들리는 것은 내 숨소리와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 뿐이었다. 

*   *   *

전등에 의지해 일기를 쓴다. 
3시간동안 조립. 너무 무거워 낑낑대며 운전은 불안불안. 
길도 잃고, 첫날 이동 거리는 겨우 10km. 
가까스로 찾은 캠핑장은 아무도 없는 암흑의 숲. 
하나하나 적다보니 참 형편없어서 키득키득 웃고 만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무척 즐거웠다. 
보잘 것 없어도 첫날을 보낸 나 자신이 참 대견했다.  

중요한 것은 어찌되었던 나는 결국 홋카이도에 와있다는 사실이었다.
아무도 없는 캠핑장에 텐트를 치고 잠들려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무엇보다도 그 사실이 이 어둡고 고요한 숲 속에서 나를 편히 잠들게 했다. 
처음에는 을씨년스럽던 나무소리도 조금씩조금씩 자장가처럼 들리기 시작해,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나는 잠들었다... 

여행은 방황과 함께 시작되었다. 

:: Photo ;; 

:: Map ;; 

:: 다음회 예고편 ::
거친? 신고식을 치른 어딘가 불안한 방랑 늑대의 본격적인 여행의 시작. 
후라노를 향해가는 동안 만난 홋카이도의 풍경과 사람들. 
끝이 없는 언덕길을 오르던 그를 살린 것은...?   
기대해주세요!
  1. 구글 번역에서는 (마소 등의 좌우에 걸치는) 짐바구니, 등에 지는 바구니라고 한다. 그랬던가... 좌우지간 이 글에서는 자전거 가방을 의미. [본문으로]
  2. 랙은 패니어가방을 장착하기 위한 금속거치대이다. 보통의 짐받이와는 조금 다름. [본문으로]
  3. 물통을 장착하기 위한 자전거 용품. [본문으로]
  4. 인천면세점에서 산 파란색럭키스트라이크. 여행 초반 나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본문으로]
  5. 일본에서 자동차,바이크,자전거 할 것 없이 여행시에 가장 널리 쓰이는 지도책. 온천,명소 등 각종 유용한 정보가 지도에 적혀있다. 그러나 전부 일본어.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