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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자전거여행/홋카이도

일본 제일 '괴팍한' 유스호스텔, 모모이와소우 ; 홋카이도 자전거 여행


2009. 08. 15 

여행 12일 째


일본 제일! 괴짜들의 유스호스텔 


꽃의 섬으로 유명한 홋카이도 최북단의 섬, 레분. 아름다운 섬 안에서도 '모모이와(복숭아바위)'의 풍경은 제일로 꼽힌다. 그 모모이와의 바로 밑에 '일본에서 가장 괴짜스런 유스호스텔'로 유명한 모모이와소우(桃岩荘)가 있다. 섬에 도착한 첫날밤, 나는 이곳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었다. 





어서와, 레분섬에. 잘 돌아왔어. 


조촐하지만 열광적인 환영


배가 레분섬 가까이 이르자 항구가 보였다. 저 멀리 깃발이 나부낀다. 몇몇 청년들이 절도있게 커다란 깃발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뭔가 계속 외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조촐하지만 열광적인 환영인파 같았다. 저들은 대체 누구인가? 저렇게까지 환영할 누군가가 이 배에 타고 있는 건가? 좀 더 가까워지자 그들이 뭐라고 외치는 지 들리기 시작했다.


'오까에리나사이!' (잘 돌아오셨어요!) 

그 인사를 나를 더욱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배가 조금 더 가까워지자 그들 중에 한 명이 들고 있는 깃발의 글씨를 읽을 수 있었다. 


'모모이와소우(모모이와장) 유스호스텔' 

그렇다. 그들은 오늘 내가 묵을 유스호스텔의 스텝들이었다. 배에서 내려 그들에게 가까이 가서 오늘 묵을 사람이라고 말하자 스텝 중 한 명이 이를 들어내고 웃으며 말했다. 


'오까에리나사이!' (잘 돌아오셨어요!)

그제서야 이해가 갔다. 그렇다. 그들은 나(손님)을 환영하러 온 것이었다! 설령 한번도 이 섬에 묵은 적이 없던 손님이라도, 그들은 열광적으로 환영하며 말하는 것이었다. 




전설의 유스호스텔. 


모모이와소우 유스호스텔. 그 이름은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전설로 오르내린다. '일본 홋카이도 최북단 레분섬의 모모이와 유스호스텔은 일본에서 가장 괴짜스런 '유스호스텔'이라는 전설이다. 역사가 50년이 되었을 정도로 대체로 숙박했던 사람들의 평가는 좋은 편. 그러나 일부는 제멋대로인 규칙과 시설, 식사 등을 말하며 그곳에서의 경험을 최악이라 말하기도 한다. 직접 묵어보니 어땠냐고? 그저 좋았다는 말은 식상하니 이렇게 말하고 싶다. 


반드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



레분섬과 모모이와소우의 첫인상 


다른 손님들은 트럭을 타고 모모이와소우까지 이동했지만 나는 자전거가 있어서 짐만 부탁하고 자전거로 이동했다. 섬을 조금 둘러보고, 언덕을 넘자 그곳은 천국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풍경이 그곳에 있었다. 지는 햇살에 복숭이바위와 푸른 절벽이 빛나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해안선과 섬의 곡선이 아름다워 탄식이 나올 정도였다. 언덕 아래를 보며 푸른 바다 옆에 모모이와소우가 보였다. 





귀여운 접수원 아가씨와 모모이와의소우의 규칙들 


뒤로는 절벽, 앞으로는 해변. 덜렁 놓인 건물이지만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바로 앞 바다에는 네코이와(고양이바위)를 바라볼 수 있는 벤치가 놓여 있었다. 유스호스텔에서 접수를 마치고 방을 배정받고 몇가지 규칙을 들어야 했다. 접수담당 스텝은 둥글둥글한 얼굴의 귀여운 인상을 가진 친구였다. 20대 초반정도 되었을까? 

- 모모이와유스호스텔은 '모모이와타임'이라는 별도의 시간으로 움직인다. 

- 모모이와유스호스텔은 금주다! 

- 모모이와유스호스텔은 10시에는 강제소등한다! 


방안에 짐을 풀고 짐을 정리하는데 스피커에서 괴성이 울려퍼진다. '밥 먹을 시간이다! 이 바보들아!' 일반적인 안내가 아니라 말 그대로 괴성에 가까운 똘기 있는 멘트들이 난무한다. 뭔가 이상한 집단에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헛웃음이 나왔다. 




작지만 유쾌한 축제 


밤에는 축제가 열려. 즐거울 거야!' 접수담당 스텝이 알려주었다. 일본에서 제대로 된 축제를 본 적이 없어서 어떤 축제가 열릴 지 기대가 컸다. 밖을 나섰다. 섬은 온통 어둠이었다. 유스호스텔 건물 이외에 주변에는 아무런 건물이 없었다. 손전등에 의지해 길을 나섰다. 유스호스텔 건물에서 조금 위로 올라가면 넓은 공터가 있는데 그곳에서 떠들썩한 웃음소리와 밝은 빛이 보였다. 어디선가 파도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기분좋았다. 섬의 여름밤은 아주 상쾌했다. 


이미 한무리의 사람들이 떠들썩하게 즐기고 있었다. 한 쪽에는 조잡하지만 왠지 이곳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무대가 있었고, 다른 한 쪽에는 야타이(屋台,거리상점)가 들어서 있었다. 무대는 준비중이었고, 야타이에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야타이에서는 엉뚱한 상품들과 약간의 음식을 팔고 있었는데 역시 조잡했지만 판매하는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즐거웠다. 작은 축제였지만 왠지 마음이 놓였다. 


무대 준비가 끝나자 아이들이 무대에 올라 다함께 가위바위보 게임을 하기도 하고 유카타(浴衣、여름에 주로 입는 일본전통의상)를 입은 아가씨들이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흥이 오르자 스텝 한 명이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스텝들의 유도로 모든 사람들이 둥글게 서서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옛날 옛적에 수련회의 마지막 밤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그 때 다함께 부른 노래가 사카모토 큐의 '위를 보며 걷자'였다. (사카모토 큐는 일본의 전설적인 가수로 한국으로 치면 조용필씨 같은 인기를 누리다가 비행기 사고로 돌아가신 분이다. 좋은 노래가 많으니 일본 문화에 관심있다면 몇 곡을 들어보시길 추천한다.)


上を向いて歩こう 위를 보며 걷자  (*번역은 저의 의역입니다)

上を向いて歩こう 涙がこぼれないように 思い出す 春の日 一人ぽっちの夜 
위를 보며 걷자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게  추억하네 그 봄날  혼자였던 밤
上を向いて歩こう にじんだ星をかぞえて 思い出す 夏の日 一人ぽっちの夜
위를 보며 걷자 (눈물에) 번진 별을 세며 추억하네 그 여름날  고독했던 밤 
幸せは 雲の上に 幸せは 空の上に 上を向いて歩こう 涙がこぼれないように  泣きながら 歩く 一人ぽっちの夜
행복은 구름 위에 행복은 하늘 위에 위를 향해 걷자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울면서 걷던 외로웠던 밤 
思い出す 秋の日 一人ぽっちの夜 悲しみは星のかげに 悲しみは月のかげに
추억하네 가을날을 고독했던 그 밤  슬픔은 별의 뒤편에 슬픔은 달의 뒤편에 

上を向いて歩こう 涙がこぼれないように 泣きながら 歩く 一人ぽっちの夜
위를 향해 걷자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울면서 걷는 혼자인 밤 

一人ぽっちの夜  나홀로인 밤 


짧고 간단하지만 애처로우면서도 흥겹고 아름다운 노래였다. 몇번이나 같은 노래를 불렀던 것 같다. 그렇게 클라이막스가 지나자 무대 위의 스텝이 말했다. 

'자, 모두들 눈을 감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하루 즐거운 순간을 되돌이켜 보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잠시 동안 생각에 잠겨보시길 바랍니다.' 

눈을 감자 거짓말처럼 조용해졌고 파도와 바람 소리 뿐이었다. 리시리 섬을 출발해 페리를 타고 레분 섬에 도착해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즐거운 축제도 즐겼다. 참으로 흥겨운 하루였다. 마음 가득 행복이었다. 그 때였다. 


'자, 이제 눈을 뜨시길 바랍니다.' 

'와아-!' 


탄성과 놀라움이 여기저기서 앞 다투어 튀어나왔다.   




별이 가득찬 하늘을 바라보며 


눈 앞에 펼쳐진 것은 별로 가득찬 하늘이었다. 가득차다 못해서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이었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별이 쏟아져 나왔을까. 스텝들이 마법이라도 부린 걸까. 비밀은 혹시라도 모모이와소우의 축제에 참가할 분들을 위해서 남겨두기로 한다. 모두들 아름다운 별하늘에 경탄할 즈음이었다.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어린 아이가 외쳤다. '어! 별똥별! 별이 움직였다! 유성인가?' 모두의 시선이 별 하나에 집중되었다. 그러자 한 어른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한다. '아니, 저것은 인공위성' 왠지 하나의 꽁트 같아서 다같이 웃음을 터트렸다. 웃음소리가 하늘 높이 솟아올라 모모이와까지 닿았고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왔다. 


그렇게 작지만 유쾌한 축제가 끝났다. 






9년 후 이야기 


나에게 모모이와소우 유스호스텔은 9년이 지나도록 좋은 추억으로 남아 두고두고 생각나는 숙소다. 그만큼 그곳에서의 하루는 나에겐 특별한 하루였다. 특별한 장소, 특별한 시간, 특별한 사람들. 50년의 역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이곳을 잊지 못하고 다시 찾는 손님들과 그들을 열정과 정성으로 맞이하는 스태프들의 일종의 보이지 않는 '유대'가 아닐까 한다. 추억하면 할수록 9년 전 그 날 밤의 나와 오늘밤의 내가 이어져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카모토 큐의 노랫말은 思い出す 夏の日 ひとりぼっちの夜 (추억하네 그 여름날 나홀로인 밤)에서 끝나지만, 그렇다고 외롭거나 쓸쓸하지 않다. 


모모이와 유스호스텔에서 함께 밤을 보낸 사람들은, 레분섬과 그 여름날 밤을 기억하며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제일 바보같고 괴팍하다는 유스호스텔 모모이와소우는, 사실은 일본 제일 아름답고 감동있는 유스호스텔이었다!